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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지식 공부

존 템플턴, 세상을 뒤집고 주식도 뒤집은 투자 귀족

by 이슈토네이도 2023.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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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길이 남을 이름, 존 템플턴 경(Sir)

세상 사람들은 남들과 다른 시각을 가져야 성공을 한다고 말합니다. 1등 주자의 방법을 그대로 따라 하는 방법이 제일 빠르겠지만, 남들과 다르게 행동해서 성공을 따낸 인물이 있습니다. 존 템플턴은 수개월 전 세상을 떠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작위 칭호를 수여받았습니다. 단순히 투자를 잘하는 사람은 세상에 널렀습니다. 템플턴은 '템플턴상'을 따로 제정하였고, 그만큼 국제사회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입니다. 템플턴 상의 정식 명칭은  '영적 진실에 관한 연구와 발견의 진전을 기리는 템플턴상'(Templeton Prize for Progress Toward Research or Discoveries About Spiritual Realities)입니다. 이 상은 종교적인 영역에서 뛰어난 성취를 하고, 인류애를 널리 펼친 인물에게 주어집니다. 상금 규모도 크다고 합니다. 재단을 만들어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상을 꾸준히 시상할 정도로, 고인의 삶이 어떠하였는지 짐작할 법합니다. 템플턴은 1912년 미국 테네시주 윈체스터에서 태어났습니다. 템플턴은 예일대학교에 입학했는데, 1931년 주가에 관심을 두었다고 합니다. 주가가 급변하는 것을 보고 기업 가치와 주가의 디커플링을 직접 체험하려고 했습니다. 템플턴은 투자와 금융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경제학과를 2등으로 졸업하고, 템플턴은 옥스퍼드 대학교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 밖에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경험을 쌓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때의 경험이 세계를 아우르는 펀드를 설립하는 데 기반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템플턴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귀국했습니다.

 

존템플턴

 

템플턴의 본격적인 역발상 투자

이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통한 미국 생산력의 증대가 엄청난 호황을 불러왔다는 점을 결과적으로 알지만, 당시는 대공황을 겪고 난 이후라, 사회도 주가지수도 매우 불안했다고 합니다. 템플턴은 이 점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전쟁이 새 기회가 될 것을 알고, 템플턴은 1달러 이하의 주식을 100달러씩 총 1만 달러를 투자했다고 합니다. 템플턴의 포트폴리오는 4배가 되었고, 이 자산 가치의 상승이 그가 회사를 출범시키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불안해할 때, 증시의 저점을 노린 전략은 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칩니다. 템플턴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뮤추얼 펀드를 만들고, 1960년대의 일본 주식시장을 정조준합니다. 우리는 이미 이 당시의 역사를 다뤘습니다. 일본의 경제는 전쟁 특수 등의 여러 호재를 타고 압축성장에 성공합니다. 일본의 주식 PER은 3배, 미국의 PER은 15배였다고 합니다. 같은 나라이고 회사라고 치면 일본이 미국보다 5배 저평가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템플턴은 펀드의 50%까지 일본 증시에 투자하였는데, 그의 펀드는 일본의 경제 성장의 과실을 그대로 흡수합니다. 템플턴이 일본 증시를 매수하던 시기인 1960년대 말 니케이 지수는 2천200엔이었는데, 1989년에는 4만 엔에 도달합니다. 다시 템플턴은 시장을 이겼습니다. 템플턴은 일본 증시의 PER이 30배를 넘자 매수 종목 대부분을 매도합니다. 템플턴은 일본 거품경제의 융단폭격을 피한 것입니다. 템플턴은 1992년 성공적인 투자를 뒤로 하고, 은퇴하였습니다.

존템플턴

 

 

예언에 가까운 템플턴의 시장 파악과 남다른 마음가짐

템플턴이 이렇게 대단한 성과를 이룬 이유는 두 가지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먼저 템플턴이 전 세계를 여행하며 얻은 경험이 세계 증시를 탐험할 수 있게 한 자신감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저평가된 주식을 찾기 위해 미국 시장이 아닌 다른 시장을 샅샅이 뒤져서 더 나은 종목을 찾으려는 노력이 빛을 발했을 것입니다. 미국 시장보다 미국이 아닌 시장이 더 위험한 것은 상식입니다. 그만큼 철저히 공부해야 가능한 성과였을 것입니다. 1992년 공식 은퇴 이후에도 템플턴은 강연과 자문을 이어갑니다. 투자 또한 놓지 않고 이어갑니다. 템플턴은 아시아에 금융위기가 일어난 직후에도 한국과 싱가포르 증시에 투자해서 많은 투자자들에게 신선함을 안겼습니다. 템플턴의 기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템플턴은 2000년 한 강연장에서, 투자 자산의 75%를 미국 국채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이때는 IT 버블이 끝을 달리던 때였습니다. 템플턴은 버블이 끝날 것이라는 점을 역발상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템플턴은 자신의 투자를 '신성한 신탁'이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부의 상승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투자의 목표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니 재단을 만들고 상을 수여하기까지 한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도 역발상 투자를 해야 합니다. 당연히 여유 금액이 있는 상황에서 진행해야 하겠습니다. 템플턴이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을 어떻게 지금 경제상황에서 실행할지 자세히 계획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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