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장한 중국과 초강대국 미국의 경쟁, 또는 공존
중국(People's Republic of China)은 덩샤오핑의 경제개방을 통해 지금까지 급속 성장했습니다. 도광양회('Hide your brightness, bide your time'), 자국의 힘을 드러내지 않고 위세를 발할 시기를 기다리며, 미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진핑(Xi Jinping) 총서기가 취임하고 3 연임을 하면서, 도광양회를 걷어차내고, 보다 공격적으로 주위 국가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그 동맹국은 중국의 팽창을 경계하며, 비군사적으로 중국을 통제할 수단을 꾸준히 창출해내고 있습니다. 그 수단 중 하나가 경제입니다. 중국을 제외한 다자 경제 협정을 중국을 경제적으로 공격하고 고립시킬 훌륭한 수단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입니다. 비록 국내의 빈부격차가 압도적으로 심각해도, 국가 수준의 경제력은 절대로 무시하지 못합니다. 앞서 게시했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바로 그렇습니다. 중국은 막대한 경제력으로 주변 국가에게 투자하고, 또 그 경제적 과실로 주변국을 유인하여 자신의 역내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중국, 그리고 주변국과 미국이 공존하고 경쟁하는 사이를 파고든 다자무역 협상이 하나 있었습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입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역내 평화적 경제 변영의 수단에서 중국 견제의 상징으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은 2005년 출범 당시, 뉴질랜드와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의 다자무역협정이었습니다. 이전 게시물에서 자유무역을 간단하게 설명했습니다. 자유무역은 장벽이 없는 무역을 통해, 각 국가가 자신이 제일 잘하는 분야로 산업을 특화하면, 세계의 소득과 후생 수준이 성장한다는 이론입니다. 100% 자유무역은 있을 수 없지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은 상당히 급진적인 다자 무역협정이기도 합니다.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경제통합을 목포로 하고, 모든 관계 철폐와 모든 비관세 장벽을 철폐하고 자유화하는 협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4개국은 2015년까지 모든 무역장벽을 없애기로 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핵심 산업은 자동차, 반도체 등이지만, 가장 아픈 아킬레스건을 꼽자면 농업입니다. 노동의 자유는 노동력 이동의 자유를 말합니다만, 평생 쌀 농사를 하던 농업인이 다른 산업의 종사자로 하루아침에, 아니 수년이 걸리더라도 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다른 산업의 종사자로 이전한다 해도, 그 훈련기간의 가족의 생계를 누가 책임져주지도 않으니, 산업의 유불리 계산은 자유무역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은 한-EU FTA나 한-ASEAN FTA처럼 메가 FTA입니다. 모든 국가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협정은 통과시키려면, 그만큼 포괄적이어야 함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협정이 당시 미국 오바마 대통령 정부의 참여로 그 성격이 급변합니다. 미국과 호주, 베트남, 페루는 2008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참여하기로 하였습니다. 말레이시아, 멕시코, 캐나다, 일본이 2012년까지 참여하기로 하며, 한때 12개국의 형태를 이뤘습니다. 메가 FTA는 국가의 시장을 압도적으로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적당한 경제 규모의 국가가 자신의 경제력의 수십배에 달하는 시장을 확보하는 효과를 지닙니다. 이 협정이 더 중요한 이유는, 오바마(Barack Obama) 정부의 '아시아로 회귀'(Pivot to Asia) 정책의 연장선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아시아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중국을 태평양 국가의 연합체로 틀어막는 것입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의 추락과 부활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당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했습니다. 이 정책적 입장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이 피해 가기가 어려웠습니다. 2017년 미국은 협정 탈퇴를 선언합니다. 일본과 뉴질랜드를 포함한 국가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2017년 말, 협정 당사국들은 미국을 제외하고 마저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이미 완성된 협정 비준안에서 미국이 필요한 영역을 연기시키고, 나머지 조항을 시행하는 방식입니다. 2018년 트럼프는 협정 재가입 의사를 갑작스럽게 밝혔지만, 재협상이 필요하다며, 당사국을 혼란스럽게 하였습니다. 이후 베트남까지 협정 비준 절차가 완료되었고, 2018년 12월 30일, 일본이 겨우 불씨를 살린 점진적포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TP;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이 발효되었습니다. 미국이 빠진 이상, 일본이 자신이 다자 무역에서 한국과 중국에 밀리는 상황을 타개하며, 아시아 영향력을 대폭 제고할 기회라고 이 협정을 주도한 것입니다. 하지만 협정을 주도한 대가는 따릅니다. 일본도 농업이 국가의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에, 기존 협정에서의 시장 50% 개방 조치 대신, 10년 내 100% 무역 장벽 철폐를 내놓아 당사국들을 설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은 이제 다른 협정 당사국과 함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체제로 들어오려는 다른 국가들보다 강한 주도권을 가졌습니다. 물론 다른 국가들이 가입하기 전까지 말입니다.
바이든(Joseph Robinette Biden Jr.)의 당선과, 미국의 아시아 국제질서 주도 회복 노력
미국 내에서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체제에 미국이 가입하지 않은 점에 대해 우려를 보냈습니다. 미국의 농업이 아시아 지역에 가졌던 우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관세가 농업 분야에 대해서도 대폭 낮아지기 때문에, 관세를 포함한 농산물의 가격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해석이 미국 전문가로부터 나왔습니다. 환태평양동반자협정이 표류할 때, 상대적으로 원활하게 추진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이 미국에 또 다른 압박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이 협정을 아시아의 질서를 중국이 주도하려는 패권 도전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밌게도, 미국은 TPP 체제 탈퇴를 확실히 매듭지었습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를 구성하여, 중국에 대항하는 아시아 국가의 새로운 규범을 정하려고 시도합니다. 즉, TPP보다 더 강한 수준의 우호와 동맹을 추구하는 국제 조직입니다. IPEF가 어떻게 새 질서를 구축해나가려 하는지, 관련 소식에 귀를 기울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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